글
Bagou; 바고
새까만 어둠이 질린 밤이었다. 어두운 건물 사이로 붉은색 눈동자가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세워진 곳에 우뚝 선 남자의 눈이 스윽 움직이며 건물 여기저기에 서있는 동상을 보더니 희미한 웃음을 짓곤 손을 뻗었다. 남자의 손이 뻗치는 곳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솟아나와 동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반짝이는 실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남자는 뚱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얽히고 섥힌 실들을 향해 손을 세워 세로로 공간을 그어내듯이 움직였다.
‘스슷-!’
미세한 소리와 함께 빛이 나던 실들이 하늘하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람이 세게 불어오며 실들이 이리저리 날렸다. 눈을 살짝 감고 느긋하게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던 남자는 이윽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바람이 멈췄을때 즈음 느긋하게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낭패라는 표정을 짓던 남자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남자가 뛰어오르자마자 그가 서있던 곳에 새하얀 빛덩어리가 커다란 구의 모양으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미친. 저게 뭐야.”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빙글 돌려 앉은 그는 점점 갯수가 많아지는 둥근 모양의 빛의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쯧. 하고 혀를 찬 남자는 흰 구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자신의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족의 힘을 빼앗는 구였다. 씨발, 교황새끼가 이번엔 아주 단단히 준비했구만.
남자는 친절한 척 웃으며 자신의 뒷통수를 치고 도망갔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태양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백금발. 미의 신의 가호를 받은 아름다운 외모.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책에서 본 이야기로는 신의 보석이라는 아뮬렛의 보석을 먹은 여인으로 인해 그의 눈은 아뮬렛과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푸른색이라 한다. 확실히 그 교황놈의 눈은 보석에 환장하는 그가 한눈에 반해버리긴 했다. 그러니까, 눈동자만. 처음 봤을때는 그의 눈만 빼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긴 했다. 죽을뻔하긴 했지만.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남자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개새끼. 아니, 개만도 못한 새끼. 내가 미쳤다고 그걸 훔치러 가서 ……. 남자는 한숨을 푹 쉬곤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을 보고 오늘은 포기하고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만도 못한 놈에게 ‘다시’ 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서. 남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구제불능이라 생각했다. 그놈의 보석이 뭐라고. 보석. 보석. 보석! 내 사랑 보석. 보석은 진리였다. 특히 스스로를 미친놈이라 불렀으면서도 교황에게 목걸이를 훔치려고 다시 이곳으로 온 이유는 하나였다.
반짝반짝허니 예쁘니까.
남자는 교황에 목에 걸려서 아름답게 반짝이던 붉은색 보석을 떠올리며 실실 웃었다. 반드시 훔치고 말겠다. 하고 다짐한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공기중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뒤 아무도 없던 나무 위로, 붉은눈의 남자가 있던 곳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백금발의 아름다운 사내가 소리없이 앉아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얼굴에 나 재미있어. 라고 써놓은 그는 킬킬 웃으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벼운 자세로 착지한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미온.”
“부르셨습니까.”
남자의 부름에 총총 걸음으로 나타난 미온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미온을 바라보던 남자는 손목에 걸려있던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 뒤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바고의 현재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교황님의 미미한 신성력이 깃든 실이 들어갔기 때문에 교황님께서 힘을 쓰시면 공명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만족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띤 남자는 조긍 전 사라진 남자가 서있던 곳에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하늘 사이에 커다란 보름달이 외로히 떠 있었다.
Act1. 오지마.
나른하니 몸을 길게 쭉 빼고 쇼파 위에 누워있던 바고는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하품했다. 열린 창문 안으로 따뜻한 봄바람이 들어와 바고의 길다란 검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밤새 이동했던 까닭에 힘을 많이 소비한 나머지 잠이 쏟아졌다. 하긴, 이탈리아에서부터 한국으로 쉴틈없이 공간이동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는 구르듯 쇼파에서 내려와 화장실까지 기어갔다. 도저히 몸에 힘이 안들어가긴 하지만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가야했다. 자신의 처량맞은 신세에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바고는 마왕의 막내아들 이었다. 하지만 보석이란 보석은 모두 모으려는 어마어마한 욕심을 가진 바고의 성질을 마왕조차 이겨낼 수 없었다. 온갖 귀중한 보석들을 훔치다 못해 마신의 신전에 있는 보석까지 훔치려다가 걸린 미수범 이었다. 위로 있는 두 형들도 정상인이 아니것만 오냐오냐 예쁘다예쁘다 하고 키운 막내아들까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마왕은 바고를 돈만 많이 쥐어주고 중간계로 보내버렸다. 그나마 상대와 피를 보지 않는 선에서 그친 막내를 보내는게 덜 피곤하다는 판단이었다. 바고는 아직 마계에서만 존재하는 아멜라의 눈동자<마신의 보석>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울고불고 마왕에게 매달리며 난리쳤지만 마왕은 코웃음 한번 날리며 말했다.
‘마계는 안 돼. 중간계는 돼.’
이 말에 바고는 얌전히 중간계로 갔다. 어차피 오래 살텐데 중간계에 있는 보석들을 죄다 훔친 뒤에 마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훔쳐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계에 존재하는 보석들을 훔치고 다녔다. 유명한 보석들 위주로 훔치고 이왕 훔칠거면 유명해지자! 하는 마음으로 마계에 있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검은 장미가 그려진 카드를 남기고 사라지곤 했다. 덕분에 <괴도 블랙 로즈>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제법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세계를 노나니던 도중 한 책을 보게 되었다. 세계의 귀중품들이 설명된 책자. 찬찬히 책을 살펴보며 아름답게 빛나던 보석들을 감상하고난 뒤 바고는 즉시 훔칠 계획을 세웠다. 삼색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귀중한 토멀린으로 만든 티아라 <아폴론 크리스>, 유명한 장인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직접 조개에 진주를 키워 수십년간 만든 반지 <인어의 눈물>, 달에서 온 고양이가 죽은 뒤 눈이 굳어 만들어졌다는 캣츠아이문스톤으로 만든 팔찌 <영광의 아리아>, 마지막으로 대대로 교황의 후손에게만 물려주는 알렉산더라이트로 만든 목걸이<요한>까지 최고로 유명한 세계 4대 귀중품들은 바고의 마음에 쏙 들었다.
‘꼬르륵.’
“아, 씨댕. 배고파 …….”
현실은 가난한 백수로 위장한 마족이었지만.
아무리 보석을 많이 훔치면 뭐하나, 실상은 팔지를 못하니 애물단지지. 바고는 한번 가지게 되면 금방 질려서 내버려두곤 했다. 집착이 심했던만큼 금방 질리는 성미에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훔치려고 했던 것이었다. 마계에서는 넘치른게 돈이라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중간계에서는 무리였다. 돈이 없어서. 암시장 루트만 알아내면 되는데 연줄이 없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아니었다. 중간계에선 오히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처음으로 중간계에 올라와서 제일 많이 놀랐던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이 ‘마법’이 아닌 ‘타프Taff’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인간들 모두가 강한 능력을 가진것은 아니었고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것들만 모아놓은 기구가 있단다. 아무튼 타프라는 능력은 성가셨다. 특별한 놈들-인간들로 치면 S랭크 능력자들이라 하는-만 두 세가지의 능력을 사용한다. 즉, 여러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표적이 되어 거의 반강제로 그 기구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세계의 능력자들이 달려든다. 세계를 위해 써야한다나 뭐라나.
이 세계에는 주기적으로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몰려온다. 아마 마계에 있는 숲에서 결계가 뒤틀리며 튕겨져 나오는 마물들로 추측되긴 하지만 중간계에서는 알리가 없으니 기구에서 파견된 인간들이 죽인다고 한다. 제법 센 녀석들이 많은가 싶어 구경좀 가려니 슬쩍 얼굴만 내밀었다가 경보용 타프가 발동하는 바람에 도망갔다. 뭐에 반응한건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었다.
바고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길었던 머리카락이 금새 평범한 길이로 돌아갔고 마족의 특징인 붉은 눈동자가 어디에서나 볼법한 갈색 눈동자로 변했다.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배고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있을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지. 밥을 먹어야 교황놈의 목걸이를 훔치러 갈 것 아니냐.
얼마 전 편의점 알바를 하다 잘린 바고(N세, 백수)는 힘없이 밖으로 나갔다.
****
교황공, 마족수를 쓰고싶었달까...
언젠가 연재하겠지?
보통의 글과 다르게 세계관은 현대SF정도로 보면 될듯..
근데 이거 트랙백은 무슨뜻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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