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 현대판타지BL, 능력자물, 복수물
* 공&수 : 다공일수, 상처있수, 무심수, 제왕수, 미인수
* 이 글은 「새드」 지향 글 입니다.
01. 신은 존재하지 않아.
남자는 검은 공간을 빠져나와 황폐한 대지를 걸어다녔다. 존재 자체가 고귀한 남자, 에멜 B 타룬은 아직 완전히 되돌아오지 않은 힘을 기다리기엔 계획한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최소 일년안에는 모든 일을 끝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에멜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적당한 공간으로 가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주위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바닥에 새겨지며 문양에서 빛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에멜의 왼쪽 눈동자에 ‘타룬의 왕’ 만이 가지는 표식이 생겨났다. 그렇게 약 3분이 지났을까, 텅 빈 짙은 회색빛의 하늘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수많은 괴생물체들이 생겨났고, 바닥에선 금방이라도 무언갈 잡아먹은 듯 혈향을 풍기는 소위 말하는 ‘괴물’ 들이 생겨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기겁할 모습이지만, 에멜의 눈엔 귀여운 ‘아이들’ 이었다.
“ 에멜님. ”
“ … 아아. ”
“ 드디어, 에멜님이 …! ”
“ 봉인이 깨졌군요! ”
괴물의 모습을 가진 것들과 달리, 인간처럼 생겼으나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남성과, 여성들이 나타나 에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믿을수가 없겠다는 듯 감동한 표정으로 온 몸으로 나 기뻐서 죽겠어요! 하고 말하고 있었다. 에멜은 그들을 바라보며 작은 미소를 흘렸다.
다행이다, 건강했구나.
처음으로 만들어, 자신의 피를 가장 많이 물려받은 아이들.
그러나 에멜의 눈엔 게중에서도 가장 아꼈던, 가장많이 사랑했던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의아한듯한 에멜의 모습에, 오렌지빛 웨이브진 머리카락을 가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그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 저, 베스는 지금 올 수가 없습니다. ”
“ 어째서 …? ”
“ 조금 긴 이야기인데 … 에멜님이 잠드셨던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해왔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
“ … 좋아, 애나. 설명하도록. ”
에멜의 말에, 영광이라는 듯 오렌지빛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환하게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애나라는 여성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에멜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느새 에멜의 품에 안겨있는 새끼늑대처럼 생긴 아이를 쓰다듬던 에멜의 입가엔, 쓰디쓴 미소가 걸려 있었다.
**
2122년 8월 5일
전 세계에 있던 ‘데스’들이 일제히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는 보고가 각 지부에 보고가 되었다.
데스들의 이상 현상에 그들을 조사하기 위해 에스퍼들을 소량 투입. 그들의 보고서에선 눈물을 흘리는 데스들의 사진을 볼 수 있었음. 이성이 존재하지 않아 가장 위험하다고 분류된 D급에서부터 B급의 데스들 모두가 같은 모습이라 보고됨. 이 괴현상에 각 지부의 대표들이 모여 제 4회 국제 에스퍼 회의가 열림.
2122년 8월 18일
미국 케리스 박사의 이성이 존재하지 않다고 보고된 D급의 데스들에게서 이성이 존재 한다는 연구 발표준비.
그러나 이 발표가 난 뒤 케리스 박사 실종. 결국 연구 결과는 세간에 들어나지 못했고, 은밀히 이 결과가 대표들에게만 전해졌다고 함.
2122년 10월 5일
세계 연합 에스퍼양성 학원에 있던, 가장 우수한 능력의 A반 학생들이 아무 이유없이 능력의 폭주현상 후 능력 제어 실패로 인한 특별 관리반으로 이름을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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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년 12월 5일
하혁은 인상을 찌푸린 채 느릿느릿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어차피 이미 문제아 반으로 찍혀버린 이상,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처음 한달은 학교에서도 자신들을 원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그 결과, 그나마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제어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위험했다. 한번 집중을 실패하면 능력의 폭주 현상이 일어났다.
… 결국 지금은 위험분자로 통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도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있었다.
“ 쳇. ”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하혁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요즘은, 먹구름만 잔뜩 껴서 푸른 하늘을 본 지 벌써 반년이 지난 것 같았다. 사실은 겨우 4달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 …아, 알게 뭐야. 빨리 가야겠다. ”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비비던 하혁은 빠르게 뛰어갔다. 귀찮았지만 출석일수는 채워야 졸업증이 나오고,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아픈 누나의 병원비를 대주기 위해선 꾹 참고 다녀야 됐다. 사실, 그 폭주가 있기 전까지는 정말로 좋았는데.
입술을 꽉 깨물어서 그런지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그는 혀로 피를 핥은 뒤 계속 이런 생각을 하다가는 피곤할 것 같았기 때문에 꾹 참고 가능하면 좋은 생각을 했다.
이렇게 축 쳐져 있으면 없던 스트레스도 쌓였기 때문에.
정신없이 뛰던 하혁의 눈 앞에, 거대한 학교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쓰레기 취급을 당하겠지만, 친구들이 있기에 참아낼 수 있을거라고 믿고있기에 그는 웃을 수 있었다.
*
거대한 시계탑 위, 에멜은 바람을 따라 귀를 간질이는 반짝거리는 은빛 머리카락을 몇번 만지다가, 앞을 바라보았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길다란 머리카락을 목까지 쳐 잘라버렸다.(아이들의 큰 반발이 있었으나, 더이상 과거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약간은 어색했으나, 마냥 계집애와 같았던 모습에서 보이쉬한 느낌이 강해져서 마음에 들었다. 진작 잘랐어야 됐는데.
잡생각을 하던 그는 또다시 과거의 잔해물들이 떠올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괜히 그 기억은 떠올리지 말자. 에멜은 한숨을 내쉬곤 시계탑 위에서 뛰어내렸고, 그와 동시에 발 끝에서부터 모습이 스르르 사라졌다.
* 장르 : 현대판타지BL, 능력자물, 복수물
* 공&수 : 다공일수, 상처있수, 무심수, 제왕수, 미인수
* 이 글은 「새드」 지향 글 입니다.
01. 신은 존재하지 않아.
바람의 흐름이 변했다.
불길한 검붉은빛의 눈동자가 하렴없이 흔들렸다. 그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왕’의 봉인이 풀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의 발등에 키스를 퍼붓고 싶었으나, 지금 그의 일이 어떻게 끝내느냐의 따라 자신들의 위치를 좀 더 올릴 수 있었다. 분명 왕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그분은, 한없이 자비로우시니까. 너무도 자비로우셔 찢어발겨버리고 싶은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으니까.
왕이봉인을 당하셨을때, 우리들은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수의 아이들을 진정시키려면 6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이 모두 다 끝났을때 즈음, 이미 수년의 시간이 지났고, 인간들은 자신들을 향해 ‘죽음’이라는 이름을 주고 능력을 가진 것들이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했었다. 우리들은 모두 ‘이성’이 존재했다. 그들이 우리를 마치 고기의 등급처럼 나누어 논 것을 기준으로, 그들은 D급의 아이들을 이성이 존재하지 않다고 세간에 널리 퍼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었다. 그 D급에 속하는 아이들은 쉽게 말하자면, 0~2세의 자아를 가진 아이들. 그들에겐 이 세상 모든것이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왕께서 명하신대로 절때 인간을 해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 아이들의 생긴 모습으로 제 멋대로 판단하여 인간에게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 …가증스러운. ”
“ 렌, 뭐라고? ”
“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
“ 흐응, 아무튼 넌 구제불능. 알 수가 없다니깐? ”
“ ……. ”
긴 금발에 글레머타입의 미인인 이 여자는, ‘데스’ 중 A급을 조사하는 팀 중 제법 능력을 잘 다루는 여자다. 이름은 ‘글로리아 D 제인’ 이고, 아마 인간중에서도 유일한 ‘빙’계의 능력을 가진 여자다. 렌은 이 여자의 능력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왕께서도, 주로 사용하는 능력이었으니까. 그리고 여자가 마음에들지 않은 이유중 가장 큰 이유는, 은근슬쩍 이 여자가 렌에게 직속상관이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관심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이 끝나는 순간, 이 여자를 가장 먼저 죽여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렌은 거짓된 미소로 제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란, 렌으로서는 유일하게 웃긴 모습이었다. 자신의 미소 하나로 여자들의 호감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역시, 인간은 멍청해.
렌은 제인의 시선이 돌려진 틈을 타 싸늘한 조소를 지은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
2066년. 괴생물체들 첫 등장
2080년. 발렌타인 P 리느앙(22세,여)과 그들의 왕으로 추측되는 소년과 접촉성공
2090년. 왕의 봉인 완료
2091년. 능력을 가진 인간들의 첫 등장
웨이브진 긴 오렌지 빛 머리카락을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빙빙 꼬며 나른한 웃음을 흘리는 약간은 앳되어 보이는 소녀, 르뷔체는 커다란 상처를 입은 채 죽어가는 짧은 남빛 단발을 가진 여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혀로 유혹하듯 자신의 붉은 입술을 스윽 핥아내렸다. 이 모습에 피를 흘리던 여자의 얼굴에는 커다란 공포감이 피어올랐고, 이 모습이 르뷔체는 마냥 재미있던지, 여자에게 다가가 쭈구려 앉아 여자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올렸다.
“ 아아, 정말. 너희들은 멍청한 것 같아. ”
“ 닥..쳐라! ”
“ 아직도 말할 힘이 남아있는거야? 역시, 대~단하신 능력자님들. 자아, 인간. 너는 무슨일로 나를 감시한거야? 응? 말해봐 …. ”
“ 내가 말을 할 것 같 …! ”
그러나 여자는, 르뷔체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친 뒤 동공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정신이 홀린듯 나즈막히 아,아. 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흘려댔다. 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르뷔체는 그녀의 귓가 근처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왜 나를 쫓아온거야?’
그리고 곧, 여자는 르뷔체에게 홀려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르뷔체는 여자의 말을 들으며 짓고있던 미소를 점점 없앴다. 이윽고 여자는 말을 마치자, 온 구멍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하였고, 숨이 넘어가듯 꺽꺽 하는 소리를 내뱉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르뷔체는 여자의 시체를 내팽겨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입술을 잘근 씹으며 세차게 어딘가를 노려보며 화를 꾹꾹 내리담았으나, 그녀의 주위에선 흉흉한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르뷔체는 차마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였다. 그녀의 붉은 눈망울에 물이 차올랐다가, 이내, 다시 사라지고 한순간 솟아올랐던 그리움의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냉정함을 되찾았다. 에멜님의 복수를 위해, 과거는 지워야 했다. 어차피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었던 기억.
…굳이, 필요하진 않았다.
르뷔체는 불길한 까만빛을 품은 먹구름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스르르 공기에 스며들듯 몸이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나서 한참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복장을 맞춘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중 한 남자는 여자의 참혹한 모습의 시체를 바라보며 화가 난 듯 그의 주위에 자그만한 불길이 샘솟았다가 사라졌다가 를 반복했다. 나머지 일행 역시 마찬가지로 화가 나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길을 내뿜는 남자와는 달리,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케이라고 불린 사내는, 얼굴에 걸쳤던 고글을 내리고 유나라 불린 여자의 시체에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조심스럽게 한기를 가진 시체를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크게 부릎뜬 눈을 감겨준 뒤 자신의 뒤로 다가온 사내를 향해 말했다.
“ 무슨 능력을 가진 녀석에게 죽은거야? ”
“ 정신계, 오렌지빛의 머리카락, 작은 체구 … 이게 한계야. 정보가 읽혀지지 않아. 그나마도 나이기 때문에 이게 가능한 것 이겠지, 다른녀석은 이것도 불가능 할 거다. ”
“ ……반드시, 그 녀석은 내가 죽일거야. 망할 데스녀석들.. 유나를 죽인 녀석은 분명, S급이겠지? 세간에는 A급까지 알려져 있으나, S급의 녀석들을 쫓는 ‘우리’ 들은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 ”
“ 그렇겠지. ”
“ 케이, 제이. 이만 철수야. 유나의 시체를 없애야되. ”
“ ……. ”
케이는 그 뒤에 있던 여자의 말을 듣고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는 있었으나, 그는 유나의 시체를 좋은곳에 묻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데스들에게 죽은 능력자들은 그대로 시체를 태워 없애야 했다. 섣불리 묻었다가는 시체를 훔침을 당해 실험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고 힘을 방출했다.
화르륵-
그러자 유나의 시체가 타올랐다. 케이의 능력은, 불. 불은 흔한 능력이기도하지만, 필수적인 능력이었다. 시체처리반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같은 능력이라도 어떻게 사용하나에 따라서 급이 달라졌다.
점점 사라지는 유나의 시체를 바라보던 케이는 주먹을 꽉 쥐고 다짐했다.
“ .. 복수해줄게, 그들에게. ”
“ 가자, 케이. ”
“ ..응. ”
케이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다시한번 머릿속에 각인하듯 바라보았다가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케이가 다가온 것을 확인한 여자는 그들에게 눈을 감으라 말 한 뒤, 모두가 눈을 감자 싱긋 웃었고, 그녀 역시 불길을 한번 흘끔 바라본 뒤 조용히 속삭였다. 동시에,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모두가 사라지고 난 뒤, 홀로 타오르는 불은 이윽고 탁탁 소리를 내다가, 점점 불길은 가라앉았고, 여자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엄숙한 분위기에 대 회의장. 그곳엔 세계 각국에서 대표로 온 에스퍼들이 거대하고 가운대가 뻥 뚫린 둥근 책상앞에 앉인 있었다. 그리고 그 뚫린 부분에선 검은 머리카락에, 눈이 보이지 않게 가리는 화려한 나비문양의 가면을 쓴 남성의 영상이 떠올라 있었다. 각 세계 지부의 대표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그 남성을 향해 존경, 혹은 경의감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성은 그들을 쭈욱 훑어보는가 싶더니 이내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고, 흰 수염을 길게 늘린 남자를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멍청하군.」
“... 죄송합니다.”
「난 그딴 변명을 듣겠다고 이 회의를 소집한게 아니야. 자, 모두 나에게 설명해봐. 어째서 그 결계가 깨진거지?」
“그건 저희도 잘..”
「거봐, 맨날 모른데. 흥. 좋아. 내가 자비를 베풀어서 설명해주지.」
“....”
겨우겨우 대답하는 늙은 사내의 모습을 즐거운, 혹은 역겨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남성은 말을 이어갔다.
「겨우 약 30년만에 봉인이 풀렸어. 말이 되는 소리야? 봉인이 지속되는 기간은 분명 최하 100년이랬어. 물론, 너희들이 관리만 잘 하면 그정도라는거야. 그런데, 30년이 지났고, 결계는 부셔졌지. 그는 분명 우리에게 복수를 하겠지. 자신을 배신한 인간들에게. 아아, 결국 우리는 죽게 되겠구나, 그들의 왕의 손으로!
...농담이야. 큭큭. 뭐야? 긴장했어? 쯧쯧. 자아, 다시 내 말을 들어봐봐.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왕을 봉인할때 왕의 힘의 원천을 우리 아버지께서 목숨을 바쳐 빼앗아, 내 목에있는 이 목걸이에다가 봉인을 했지. 이게 그 자에게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 왕의 힘은 우리가 힘을 합치면 다시 봉인, 아니... 죽일수 있어!
어때, 완전 끌리지 않아? 그 왕을 우리의 손으로 죽일 수 있다니깐? 게다가, 그의 피로 인해 우리의 인류는 더더욱 발전을 할 수 있게 될거야! 아, 이 얼마나 멋진 목표인가!!」
남성의 말이 끝나자, 좌중엔 무거운 침묵이 내리앉았다. 실로, 엄청난 목표. 하지만, 그들은 쉽게 그에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장난같지만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가 한번 몸을 움직이면, 괴물들이 순식간에 쓸려나가듯 수백의 죽음은 기본이었다. 가장 진하게 능력을 타고받은 남자이자, 전 세계의 지부를 통괄하는 남자.
루브체 P 리느앙.
그는,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은 능력자이자, 지배자의 피를 물려받은 남자였다.
***
이게 작년 3월에 쓴듯. 폰 뒤지니까..
굉장히 연성한게많..
심지어 이것도 SF. ...
미친듯이 어두운 숲속을 달려나갔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수는 없었다. 형님, 형님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수가 있습니까. 난 형님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쳤는데. 어째서, 어째서 형님은 나를 배신한 것입니까.
쉭!
"으윽!"
미카엘은 오른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입술을 악물며 고통을 참아냈다. 헤이스트로 몸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형님이 보낸 암살자들은, 아니, 대대로 왕을 보좌해오던 특수암살부대 다크문들의 능력은 대단했다. 24살의 어린 나이로 천부적인 마법의 재능을 가진 그는 어릴적 우연히 발견한 곳에서 읽은 책으로 수련을 거쳐 마나를 느끼는 체질을 가지게 되었고 자연에 머물고 있는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재능으로 인해 미카엘은 그의 아버지에게 사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그 재능이 문제였을까, 많은 후보자들이 그를 견제했고, 결국 그는 은둔생활을 즐기며 학문적인 진취만 해왔다.
그러던 어느날 찾아온 형님. 형님은 자신의 능력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처음엔 달갑지 않았으나 장난스럽고, 친근한 그의 행동에 결국 넘어가 그를 도와 왕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했다.
그런데, 형님은 왕위를 잇자마자 모든 형제들을 죽이고, 심지어 미카엘마저 죽이려고 칼을 꺼내들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미리 이동마법진을 손으로 그려놓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뻔 하였다.
어째서? 왜? 난 왕의 자리에 관심이 없는데?
미카엘은 코끝이 찡해졌다.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눈물을 꾹꾹 참고 미친듯이 달려나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자신의 옛 은신처에 다달을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평생을 숨어 살 것이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을거고, 절때 믿음을 주지 않을것이다.
"절대, 절대로……."
이젠 그 누구도 믿지 않을거야.
고통에 얼룩진 미카엘의 흰 얼굴에 그려진 아름다운 녹빛의 눈동자에는 큰 상처와 슬픔, 배신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미 그의 아름답게 빛나던 금발은 그 자신의 피로 물들여져 있었다. 미카엘은 숨을 헐떡이며 이상스럽게도 조용해진 주위 모습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뿔사,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에 그들의 기척을 놓쳐버렸다. 그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욕설을 내뱉으며 손을 움직였다.
아름답게 빛나는 금빛의 마법진이 공중에 그려지며 미카엘의 두 눈동자가 적빛으로 물들여졌다. 동시의 그의 붉은빛 도톰한 입술이 움직이며 하나의 주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둠으로 물들여진 죽음의 빛, 심연속에서 빛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여. 나, 미카엘 가르시안의 이름을 담아 감히 그대를 소환한다.」
미카엘은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에 손을 문질러 피를 묻힌 뒤 어느새 완벽하게 그려진 마법진에 문질렀다. 그러자 금빛의 마법진은 새빨간 피빛으로 뒤바뀌며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카엘은 도박을 했다. 이래서 죽어나가나 저래서 죽어나가나, 너 죽고 나 죽자. 이 소환진은 죽음의 불꽃을 불러내는 것으로, 소환진의 주인이 죽지 않는 이상 절때 꺼지지 않는 불이었다.
그는 이 숲을 태워버릴 생각이었다. 이 숲은 왕국의 소유인 숲. 귀중한 재산이자, 일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일반 백성들따위, 미안하지만 미카엘에겐 전혀 하등 도움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이기적이라고 욕할진 모르겠지만, 미카엘에게 중요한건 자신의 울타리 속 사람들 이었다. 그 밖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어떻게 되든 절때 신경쓰이지 않았다.
「이 숲을 태워버려라, 죽음의 불꽃 하 ── 크악!!」
미카엘은 어디선가 튀어나온 단검에 옆구리에 찔려 주문 영창을 실패했다. 조금만 더 했으면 됐는데,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던 것인가. 절망적이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며 몸이 크게 흔들렸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나무에 지탱하며 고개를 흔들고 앞을 바라보자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복면을 쓴 남자들이 나타났다.
"이런, 이런. 숲을 다 태워버릴 작정이셨습니까, 왕자님."
"닥,쳐. 내가, 크윽, 언제,부터 왕 취급 …, 하아, 하아."
"오, 숨소리가 매우 거칩니다. 이만 포기하시고 순순히 죽어주세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시끄러워!!"
죽는다고? 절때 안죽어. 미카엘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생각하는데, 문득 눈 앞에 펼쳐진 마법진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는것을 발견했다. 마나를 많이 불어넣어서 아직도 유지되어 있는듯 보였다.
순간 미카엘의 머릿속에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그는 타이밍을 만들기 위해 그들을 노려보며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죽기전에, 궁금, 한게 있다."
"…… 뭐, 그정도의 자비는 드리죠. 무엇이 궁금하신거죠?"
"형님, 형님은 왜 나를 죽이려는 것이냐."
잠시 상대는 멈칫했다. 그리고 무어라 말을 하려는 순간 미카엘은 마법진에 뛰어들며 블링크를 외쳤다.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 순식간에 눈앞이 흐려지며 아까 그곳과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온 것을 느꼈다. 어쩔수 없이 다시 달렸다. 단검을 뽑으면 과다출혈로 죽는다. 옆구리에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고통에 숨죽이며 간신히 달리는데, 벌써부터 그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은 미카엘을 돕지 않았다. 숲의 끝이 보였으나, 그곳은 피의 절벽으로 불리우는 곳, 비명의 절벽에 다달았다. 블링크를 사용한 동시에 길을 잘못든것이 문제였던가.
결국 절벽 끝에 도착하여 허망한 표정으로 밑을 바라보았다. 밑도 끝도없이 펼쳐진 절벽아래,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왕자님. 아까 그렇게 도망가셔서 놀랐습니다."
"!!"
"이젠, 도망갈곳도 없으시고…… 끝이네요. 자, 얌전히 계세요. 육체를 가져가야 합니다."
"왜 ……?"
"거야, 명 … 아니, 됐습니다. 길게 말을 이어가봐야 저만 힘들죠."
또 도망가실 수 있으니까요. 남자는 과도한 몸짓으로 크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미카엘은 자신의 육체가 그들에게 옮겨져 형님께 간다는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자신의 형님은, 자신의 몸에 성욕을 느낀다. 직접 입으로 들었었다. 그때는 농담으로 알았지만,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암살자가 손쓸세도없이 미카엘은 절벽 뒤로 몸을 던졌다. 이대로 마법을 쓰고 이동할수도 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렸다. 그냥, 죽고싶었다.
미카엘의 감은 눈 앞에, 주마등처럼 과거가 흘러갔다. 그 속에, 환하게 자신을 향해 웃음짓는 죽은 모친이 보였다.
어머니, 저도 그곳으로 갑니다.
그의 입가엔 어느샌가 슬픈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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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빛이 있다면, 이면처럼 그 세계에 어둠속 깊은 곳에 거대한 조직체계가 이루어져 있었다. 국가가 빛이라면, 조직은 어둠. 그들은 서로 상호 보완 관계를 이루어 나갔다. 서로의 잘못을 암묵적으로 덮어주는, 그런 관계.
그리고 그 곳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하나의 조직 ‘흑월단’이 있었다. 그 누구도 그곳의 진정한 주인을 모르고 있었고 비밀리에 활동하는 최고간부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면 국가가 맥을 못추린다는 말이 암흑계에 암암리에 퍼져있었다.
그 거대한 조직의 주인은 느긋하게 침대에 기대어 책을 보고 있었다. ‘들장미 소년 초콜릿’ 왕년에 모든 소년들의 심금을 울린 명작중에 명작이었다. 한 평범한 소년이 귀족 여성에게 유혹을 받았다가 결국 버림받고, 절망에 미친 소년은 그런 귀족 여성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느린 속도로 책을 꼼꼼히 읽어내렸다.
위잉 ──
"……?"
그가 공기에 이상한 진동을 느끼며 책에서 눈을 돌려 진동이 느껴진 곳을 바라본 순간, 저도모르게 손에 들고있던 책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 ── 천사?"
믿을수 없게도, 그의 눈 앞에서 찬란한 빛을 내며 한 남자가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남자의 머리는 굽이지며 매끄럽고 탐스러운 긴 금발이었다.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은 꽃이 피어오른듯 잘 어우러져 있었다. 금빛의 긴 속눈썹이 저도모르게 그가 손을 뻗게 만들었다. 남자가 몸을 일으켜 공중에 떠있는 남자에게 다가갔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남자를 잡은 순간, 빛이 사라지며 스르르 남자에게 안겨왔다.
남자는 믿을 수 없는 일에 말없이 눈만 깜박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안겨있던 남자의 눈이 부르르 떨리며 열렸고 그 속에 숨겨져있던 아름다운 빛깔의 적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 아."
무어라 붉은 입술이 달싹였으나, 들리지 않았다. 결국 그 적색 눈동자가 다시 사라졌고, 잠이 든 듯 고요한 숨소리만 울려퍼졌다. 그가 남자와 잠시 눈이 마주치며 느낀것은
"무슨 일이 일어난건진 모르겠지만……."
남자의 입가가 기분좋은듯 호선을 그렸다.
"내 품에 들어온 이상, 당신은 내 것입니다."
지독히도 짙은, 소유욕 이었다.
미카엘은 귓가에 들리는 부드러운 저음에 기분이 좋았다. 따뜻했고, 포근했다. 조금은 딱딱했지만 기분좋은 향기도 맡을 수 있었다. 이대로 계속 자도 되는걸까, 그런데 나는 지금 죽은게 아니었던가?
이상함을 느낀 미카엘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눈 앞에 보이는것은, 구릿빛의 매끈하고 잘 짜인 근육질의 사내의 몸, 위로 시선을 올리자 조각같은 턱선에, 곱게 호선을 그린 입술과 칠흑같은 눈동자 ──
"허억!"
"아, 일어나셨습니까?"
"누, 누구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눈만 뜨고 낯선 사내를 향해 기세좋게 외쳤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것을 그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뭣 하면 마법으로 죽이고 도망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남자를 노려보았지만, 시종일관 기분좋은 표정으로 자신을 안고있는 남자에게는 어째선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긴장을 슬쩍 풀자, 그제서야 미카엘은 그를 향해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다. 생전 처음보는 검은머리.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려 부드러워 보이는 까만빛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생각만큼 부드러웠다. 신기한 눈빛으로 계속 만지작 거리자 남자가 자신을 향해 귀엽다는듯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아차, 하고 낑낑대며 몸을 일으켜 남자에게서 벗어난 뒤 경계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미카엘은 생전 처음보는 것들이 놓여져 있어 깜짝 놀랐다. 이상한 박스같은것과, 차가운 바람을 내뿜는 길다란 물체. 이곳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왜 죽지 않았을까에 대한 생각부터 들었다. 분명 절벽에서 떨어졌었는데 눈을 뜨니 검은머리를 가진 남자의 품에 안겨있었고, 주위엔 전혀 처음보는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어쩔수 없이 미카엘은 남자에게 경계를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누구냐."
"전, 최 단 입니다. 당신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 미카엘, 미카엘이다."
"미카엘 … 당신은, 역시 천사인가요?"
"무슨 개소리야? 개수작 부리지마, 여긴 어디지?"
"이곳은 대한민국, 서울 입니다. 자,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어디서 온거죠?"
"대한민국? 서울? 그게 뭐지 ……."
"미카엘씨, 이제 제 질문에 답해주시죠."
어제부터 궁금해서 미치는줄 알았어요. 단은 호감어린 웃음을 지으며 보채듯 미카엘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은근히 무언의 압박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에 움찔 떨며 고민했다. 혹, 자신을 위협하는 암살자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런 미카엘의 고민을 눈치챈듯 단이 미카엘에게 다가왔다. 움찔 몸을 떨며 거부의 몸짓을 보였음에 불구하고 시종일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집스럽게 다가와선 미카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는 절대 미카엘씨를 해치지 않아요. 미카엘씨는 제게 날아온 천사잖아요?"
"글쎄, 난 천사가 아니라니까……."
"그렇다면, 미카엘씨는 어디서 온 누구십니까?"
단의 물음에 미카엘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세계엔 그가 살았던 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알아차렸다.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곳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확심이 들었던 이유는 자신을 최 단이라고 소개했던 남자의 머리카락이 검은색 이라는것. 과거 건국신화에서부터 검은색은 불길한 색이라며 배척받아왔다. 그러나 어딜가나 모순이 있는법. 왕국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공존하도록 조정했고, 그 증거로 ‘다크문’이라는 암살조직단이 있었다. 자신의 어미도, 그곳 출신이었다. 미카엘 역시 조직의 일원과 친분이 있었다. 형님이 왕이 되기 전 까지만 해도. 형님이 왕이 된 순간, 선왕이 만들었던 모든것이 물갈이 되었으니까.
으드득.
미카엘은 멍청하게 당황해 형님에게 당했던것이 억울하여 끓어오르는 살기를 감추지 못했다. 깊은 배신감, 그것은 미카엘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
미카엘의 살기로 공기가 삽시간에 진동이 울려퍼지며 모든 물건이 지진이 난 듯 덜커덩 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에 잠시 짧게 혀를 차며 단이 미카엘을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끌어당겨져 안긴 미카엘이 의아해하며 살기를 풀자, 진동이 멈췄다. 그제서야 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질문에 대한 답은 나중에 들어도 괜찮으니까, 너무 화를 내지 마세요."
"아?"
"당신의 예쁜 얼굴이, 다 망가집니다. 미카엘씨."
"…… 닭살돋아, 너."
"감사합니다. 미카엘씨가 닭이 되면, 맛있게 잡아먹어드리죠."
"윽."
소름끼친다는듯 혓바닥을 내밀며 우웩, 하던 미카엘은 자신이 어느샌가 경계하던것을 멈췄다는것을 느끼곤 깜짝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지어 이 남자의 품에 있는것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떨어지기 싫을 정도였다.
단은 미카엘의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가 어제와는 달리 푸르른 녹빛으로 변한것을 발견했다. 붉은빛이 소름끼치게 유혹적이었다면, 지금의 녹빛은 천진난만한, 순수함만이 든 눈동자였다. 뭐, 이렇든 저렇든 상관 없으려나. 어차피 이 사람은 내것인데. 단은 미카엘이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마법을 난사할만한 사실을 속으로 내뱉고 있었다.
"갈곳이 없으실게 분명하니까, 저희집에서 지내세요. 불편한것도 없게 해드리고, 맛있는것도 드리고, 필요한게 있으시면 뭐든지 드리겠습니다."
"…… 너, 처음 보는 사람한테, 아무 정보도 없는 사람에게 너무 잘해주는거 아닌가?"
"상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저에게 위협을 줄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아, 미카엘씨라면 제게 위협이 될지도."
얼굴만 봐도 심장 떨리거든요. 단이 웃으며 말하자, 처녀에게 고백을 받은것 마냥 미카엘의 심장이 쿵. 뛰었다. 왜 이러지. 그는 애써 침착을 가장하며 그를 밀어냈다. 의외로 약한 힘에도 물러나준 단에게 아주 조금 고마움을 느낀 미카엘은 고개를 휙 돌린채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밥 줘."
"밥… 뭐 좋아하세요?"
"아무거나! 내가 이곳 음식을 어떻게 알아?"
"아, 그것도 그렇군요. 금방 가져다드리죠."
단이 일어나며 슬쩍 미카엘의 긴 금발을 들어올리며 입을 맞추었다. 그런 단의 행동에 당황한 미카엘의 얼굴이 빨갛게 홍조가 지며 어버버 거리자, 단이 웃음치며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가고 한참을 입을 벌린체 멍하니 있다가 미카엘은 단의 입술이 닿았던 머리카락을 잡아올려 살살 꼬았다. 몇번 꼬다가 대충 놓아버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텐을 슬쩍 올리며 창문밖을 바라본 순간 미카엘은 다시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맙소사…… ."
원래 있던 세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고층의 건물들이 끊임없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가 있는 곳 아래엔 이상한 쇠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미카엘은 설마 하며 언젠가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차원이동]
미카엘은 절벽에서 떨어져서, 이세계로 차원이동을 한 것이었다.
*
단은 문을 닫고 나오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천사님께 무얼 드려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간만에 기분이 좋았다. 어제 밤에 미카엘을 끌어안고 나서 보니 피가 질척하게 묻어있었다. 의사를 불러야할 만큼 심각한 상처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에게 꽂혀있던 단검이 저절로 뽑히며 상처까지 말끔히 나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빛 속에서 그가 나왔으니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언젠가 친해지고, 미카엘이 완전히 자신의 소유가 된다면 그 상처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지금은 생각보다 빨리 경계가 느슨해졌지만, 단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카엘이 단기간에 자신을 백퍼센트 믿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 이런 생각을 하던 단은 문득 자신이 이토록 소유욕을 느꼈던 존재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선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 어느것에도 관심이 가지 않았던 걸까.
"뭐, 상관은 없지만."
단은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된장찌개를 꺼내 데우며 콧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한식을 좋아하니까 미카엘도 한식으로 입맛을 길들여야지.
그가 알지 못하게 모든것을 자신과 똑같게 물들여야지.
그가 빛이라면, 나의 색으로 바꾸어 주겠어.
단은 된장찌개를 상 위에 올리며 비틀어진 웃음을 짓곤 다시 만들어진 웃음으로 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방 문을 열어 미카엘을 향해 말했다.
"식사하세요, 미카엘씨."
"아, 응."
문을 열자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있던 미카엘이 창백해진 얼굴로 비틀거리듯 움직였다. 단은 재빨리 미카엘을 부축이며 바닥에 앉힌 후 큼지막한 상을 가지고왔다.
이건 또 뭐야 하는 표정의 미카엘을 향해 단이 환히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는 좌식이에요, 미카엘씨. 아, 젓가락 쓸 줄 아세요?"
"……."
사실 서양식도 있지만 난 좌식이에요. 이 말은 내뱉지 않은 단은 미카엘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자 이때다 싶은 단이 젓가락을 쥐는 폼부터 시작해서 이것은 이렇게 잡아야 한다 ─ 라는 요령 하나까지 알려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시일이 지난 후, 이곳에 적응을 한 미카엘은 드라마를 보다가 단에게 속았다는것을 알고 크게 분노했다고 한다.
시르핀 대륙의 군주는 세계를 관리하며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코드를 가졌다. 군주의 나이는 알 수 없었고, 그의 얼굴 역시 아는자는 몇 없었다.
대륙 안에 있는 나라는 총 3개의 나라와 이름이 없는 나라, 수없이 많은 도시들, 대륙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산맥 한 줄기, 접근 금지 구역의 크기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거대한 숲이 떡하니 존재했다.
각 나라들은 독특한 문화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과 무기가 특출나게 발달한 데시온, 이종족과 고유의 코드를 이용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 모인 크로니아, 그들 사이에서 무역을 하고 사는 상인의 나라 제시칸, 마지막으로 그 모든 곳에서 버려진 자들이 모인 이름이 없는 나라가 있었다.
시르핀 대륙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데시온과 크로니아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들 제각각 본인들의 능력을 과시하느라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타고 있었다.
그 줄타기는 대륙력 2265년에 데시온 대표의 막내아들이 크로니아에 여행을 갔다가 이성을 잃은 크로니아의 이종족에게 처참한 몰꼴로 살인을 당해버렸다는 이유로 끝이 나버렸다. 그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데시온의 대표가 이종족들에게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대륙의 전쟁이 일어나면 군주의 조율하에 화해협약을 맺고 평화를 유지하나, 이미 오랜 시간동안 모습을 들어내지 않는 군주의 존재는 점점 잊혀지고 있었고 어느 순간에 대륙인들은 군주는 전설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 시르핀 대륙의 서 8P ~ 시르핀 대륙 ~
◇
어두운 골목을 도망치듯 달리고 있는 어린 소년이 있었다. 일부러 기른듯한 앞머리로 왼쪽 눈을 가린것도 모자라 소년은 더럽혀진 옷과 몸과 다르게 깨끗하고 중간에 붉은색으로 G가 새겨진 광택이 나는 매끈한 모양의 안대를 쓰고 있었다. 반대쪽 눈은 선명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푸른색 눈동자 였다. 그러나 뭐가 그리 불안한지 소년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소년은 다리를 멈추고 쉼호흡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휙휙 고개를 돌리던 소년은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안심한 듯 한숨을 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 소년은 고개를 떨군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왼손을 들어 자신의 안대를 소중하게 어루만지다 흠짓 놀라며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어이, 꼬마.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어.”
“귀찮게 하는구만. 이 쪼매난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거래에 늦겠잖아.”
“!”
소년은 입술을 악물은채로 뒷걸음질 쳤다. 유일하게 보이는 소년의 푸른 눈동자엔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두 남자들은 소년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즐겼다. 이런 상황에 대해 희열을 느끼기에 그들은 ‘납치’라는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킬킬 낮은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소년에게 다가가던 그들 중 한 남자가 다시 도망치려는 소년에게 한쪽 손을 뻗으며 외쳤다.
「MD-55??, 타킷을 속박하라!」
남자의 외침과 동시에 소년의 그림자가 뭉실뭉실 일어나 그의 가느다란 다리를 잡아챘다. 갑자기 억지로 멈춰진 영향으로 앞으로 세게 넘어진 소년은 고통의 신음을 내뱉으며 발을 굴러 그림자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억세게 잡힌 그림자를 빠져 나가는 것은 아무 힘도 없는 소년에게는 무리였다. 결국 포기한듯 움직임을 멈춘 소년은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남성을 향해 시선을 돌리다가 이내 눈을 꽉 감았다. 앞으로의 일이 불안한지 여린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무서워.
소년의 오른쪽 눈가에서 깨끗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그 모습이 즐거운지 사내들은 낄낄 웃는다. 소년에게 속박을 건 험상궂은 사내가 쭈그려 앉아 소년의 여린 몸을 스윽 훑곤 입맛을 다진다. 순간, 남자의 머릿속엔 상품의 온전한 상태와 성욕. 이 두 사이에서 커다란 갈등을 맺었다. 지금은 워낙 굴러서 더럽혀지긴 했지만 씻기만 하면 깨끗한 금발과 새하얀 피부, 사내를 자극하는 푸른 눈동자는 남자의 취향에 꼭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두개의 갈등 중 전자를 택했다. 성욕은 다른 녀석을 사들여 풀면 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소년을 들쳐맸다.
모든것을 포기한듯 소년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하릴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소년은 원래 있었던 곳으로 가면 노예의 인장이 찍힘과 동시에 마음대로 죽을수도 없게 된다. 비참한 인생. 차라리 그럴바에는 지금 자살을 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소년에게는 꿈이 있었다.
낳아준 부모님을 찾는 것.
이 하나를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다.
‘그래, 괜찮아. 좋은 주인님을 만나면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실지도 몰라.’
소년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길거리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던 소년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멈췄던 눈물이 다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년을 들쳐매고있던 남자의 몸이 크게 휘청이더니 이내 바닥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특유의 반사신경으로 남자의 팔에서 힘이 빠지는 순간 뛰어올라 바닥에 착지했으나 잘못 착지했는지 오른쪽 발목이 아려왔다. 발목의 고통에 끙끙 앎던 소년은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껴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을 잡아들였던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발견했다. 두 남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챈 소년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소년의 주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 죽은걸까, 그 의문도 잠시. 소년은 아픈 다리를 이끌고 그곳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기 위해 달려나갔다. 느린 속도지만 그래도 시체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소년은 그제서야 안심했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담장에 등을 기대어 하늘을 바라 보았다.
어두운 골목가와 다르게 희미하게 보이는 푸른 하늘은 소년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고, 몸에 힘이 빠진 소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색색 고르게 숨을 내쉬며 잠에 든 소년의 앞으로 새까만 장발을 가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는 한참을 소년을 내려다 보다가 이내 안아들곤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그 후 수년이 흘렀다.
카라는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남쪽의 차가운 냉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아타르의 달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것만 벌써부터 찬 냉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세계의 균형이 흐드러지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미세하게 열린 창문을 통해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카라는 창문을 닫고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갔다. 자동으로 준비되어 있는 따뜻한 물을 틀어 긴 밤동안 쌓인 먼지를 씻어 내렸다. 쏴아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머리와 몸을 적셔내린다. 물에 젖어 약간은 탁한 빛을 띄는 금색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감싸온다. 카라는 가벼운 손길로 머리를 쓸어내리다가 거울을 통해 보이는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흘끔 바라 보았다.
죽는다고 생각했던 그때 기적처럼 구원을 당했다. 누가 자신을 구해준 것인지는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다리가 퉁퉁 부어있던 카라의 여린 몸 위로 고위층의 것으로 추측되는 모양의 제복 자켓이 올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잠시 들리던 군의장관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켓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해 그것을 들추어보니 그 속에서 다 죽어가던 카라를 발견하고 데려와 치료를 했다고 한다.
물을 끄고 벽에 있는 센서에 익숙하게 명령어를 입력하자 카라의 몸을 붉은색 빛이 스캔했다. 빛이 사라지자 축축하게 젖어있던 몸은 보송보송하게 말려져 있었다.
욕실 안에 있던 속옷을 입고 나와 벽에 있던 번호키를 입력하자 안드로이드 프로그램의 인공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며 간단한 안부와 함께 밑에서 둥글게 원이 생기며 그의 제복이 올라온다. 옷걸이에 걸린 남색 셔츠를 입고 검정색의 깔끔하게 각이 잡힌 바지를 입은 뒤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 가죽 벨트로 허리를 조이고 마조끼를 입었다. 그 뒤 검정색 장갑을 끼고 흰색 줄이 소매에 박힌 금장 단추가 달린 제복 상의를 입고 거울을 바라보며 옷 매무새를 정리 했다. 옷 카라에는 보좌관을 상징하는 둥근 벳지가 달려있어 제국의 조화인 류베로우즈가 새겨져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듯 빛이 났다.
“…….”
카라는 무감각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마지막으로 왼쪽 눈에 안대를 착용한 뒤 군화로 갈아신고 방을 나섰다.
거대한 복합빌딩 속에 카라의 방과 직장이 모두 있었다. 카라는 빌딩의 주인인 가르비아 S. 블랜 소장의 보좌관 이었다.
과거 카라를 치료한 군의장관은 가르비아 소장의 친우였고, 대뜸 치료가 끝난 카라를 가르비아에게 ‘네가 이 애를 키워!’라고 외치며 사라졌다. 얼떨결에 소장에게 맡겨진 카라는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가르비아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쫓아낼까 두려워, 또다시 버림을 받을까 무서워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때 카라의 머리에 커다란 손이 올라왔다. 퍼뜩 놀라며 고개를 들자 놀랍게도 가르비아는 카라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잘 부탁한다.’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다. 그 후에는 가르비아의 미소를 절대 볼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무표정이었고 가끔은 창 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괴로운 표정을 짓곤 했다. 카라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가르비아에게 미소를 되찾아주고 싶었다. 어째서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인지, 웃음을 보이지 않는 것인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똑똑.
“소장님. 들어가겠습니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언제나 말끔한 상태의 가르비아가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는 카라가 들어오자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어떻게 보면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만도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언제나의 모습 이었다. 카라는 익숙하게 커피를 직접 끓여 가르비아의 책상에 올려놓고 옆에 서 있었다. 가르비아는 카라가 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서류를 보다가 옆에 서 있는 카라를 바라 보았다.
그의 시선에 카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커피 더 타올까요?”
“…….”
“음, 이따 드릴게요. 아, 오늘 날씨가 쌀쌀하죠? 아타르의 달이 올해는 한달 정도 빨리 찾아온 것 같아요.”
가르비아는 카라의 말을 듣다 말고 창문 밖을 바라 보았다. 아, 무시당한건가. 카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수신기에 진동이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수신기를 꺼내 간단한 조작으로 화면을 틀자 1층에서의 연락이었다. 이 빌딩은 마물의 숲 입구에 지어진 도시에 있어 전체적으로 도시의 안전을 관리했다. 1층에서의 연락은 마물의 숲에 어린 아이들이 몰래 들어가 부모들의 구조요청 이었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이 빌딩, 가르비아의 군에 소속된 자들은 다른 지부들과 다르게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쉽게 의뢰를 수행하고 돌아오곤 했다.
지금의 상황 역시 몇몇의 대원들의 출동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신기를 주머니에 넣은 뒤 카라는 책상 위 어딘가에 있는 버튼을 조작해 화면을 띄었다.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오른 화면에는 검은색 머리카락의 준수한 얼굴을 가진 사내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해왔다.
[가우리 부대 중사 킨메이 J. 리오, 수신했습니다. 오늘도 카라씨의 아름다운 꿀색의 머리카락이 달콤하게 빛-]
“킨메이씨. 어린 아이들이 또 숲에 들어갔습니다. 몇몇의 인원을 꾸려 다녀오세요.”
단호하게 말을 끊은 카라의 행동이 익숙한듯 가볍게 웃음지은 킨메이는 아쉬운 기색 없이 알겠다고 외치며 수신이 끊겼다.
가우리 부대는 이 도시에 존재하는 4개의 부대중 마물의 숲 담당 부대였다. 마물의 숲은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숲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다행히도 어느정도의 길이까지는 각 나라의 협약을 받고 숲을 조사해 어느정도의 길이까지는 안전지대로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 된 곳.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위험한 숲이기 때문에 접근을 불허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가하고 도시의 아이들은 이 숲으로 가는 것을 좋아했다. 매일 적으면 두 번, 많으면 네 번까지 출동 명령을 내려야 했다.
“그게 이상하단 말이지 …….”
“어린 아이들이 자꾸 숲으로 가는 것 때문에 그런건가.”
“네. 유독 저희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호기심이 넘치는 건지 어느 날 부턴가 자꾸만 아이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네요.”
카라가 창 밖으로 근접해있는 마물의 숲에 입구 언저리를 걱정스럽게 바라 보았다. 가르비아는 그런 카라의 얼굴을 보며 느릿느릿 서류를 처리하며 말했다.
“얼마 전, 하나의 서류가 올라 왔다. 수도에서 올라온.”
“네? 그럴리가 …… 제가 다 검토하고 올리는걸요. 수도에서 온 것은 없었는데.”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뜬채로 가르비아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가르비아는 서랍을 열어 카라에게 수도에 있는 총사령관의 도장이 찍힌 하나의 서류를 건내주었다. 조심스럽게 건내받은 서류를 살펴보던 카라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적힌 종이에 헉 하고 놀라며 가르비아를 쳐다 보았다. 턱을 괸채 카라를 올려보던 그는 이내 천천히 말했다.
“사람의 꿈속으로 들어가 유혹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능력의 몽마가 숲을 지나왔다. 하루 빨리 소탕 하라.”
“… 총사련관님께서 명령하신 건가요?”
“아마도.”
“그래도 죽이는건 너무해요. 아직 큰 피해도 없고, 쫓아내는 것으로는 안되나요?”
가르비아는 절대 데시온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나올리가 없는 말을 하는 카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저 묵묵히 책상을 규칙적인 박자로 두드렸다. 사실 그는 카라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고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으나 3일 이내에 작전을 실시하지 않으면 지시 불이행이라는 소리가 옴과 동시에 자신의 군들을 수색한다. 현재 크로니아와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수없이 많이 치뤄지고 있었다. 특히 이종족에 대해 큰 원한을 가진 수도의 군들은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꼼꼼히 명령을 불이행한 군들을 수색 했다. 가르비아는 자신의 검을 머리카락과 다르게 반짝반짝 빛나는 카라의 금빛 머리카락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님. 어디 가시-”
“가우리 소대에 정식 출동 명령을 내려.”
“!”
“명령이다.”
카라는 머뭇거리다가 단호하게 다시 말하는 가르비아의 말에 할 수 없이 수신기를 들었다.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며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 가득 찬 하이얀 얼굴. 하지만 카라의 은인이자 상관의 명령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는 다시 한번 연락을 취했다. 가우리 소대에 긴급 명령을 내리자 먼저 출발했던 대원들과 합류를 하겠다며 답신이 왔다. 카라에게는 불필요한 살생은 결코 원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또, 이종족이라고 무조건 죽일것이 아니라 설득을 해서 멀리 보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나라면 가능할지도 …….’
어릴때부터 이종족들은 카라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 사실을 깨달은 카라는 사무실에서 사라진 가르비아의 모습에 서둘러 자신의 무기가 담긴 네모난 캡슐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벗어난 카라는 속으로 이종족 때문에 가르비아에게 반항하는 본인에게 최악의 감정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전용 바이크를 타고 숲으로 달려갔다.
새까만 어둠이 질린 밤이었다. 어두운 건물 사이로 붉은색 눈동자가 슬그머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세워진 곳에 우뚝 선 남자의 눈이 스윽 움직이며 건물 여기저기에 서있는 동상을 보더니 희미한 웃음을 짓곤 손을 뻗었다. 남자의 손이 뻗치는 곳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솟아나와 동상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반짝이는 실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남자는 뚱한 표정으로 여기저기 얽히고 섥힌 실들을 향해 손을 세워 세로로 공간을 그어내듯이 움직였다.
‘스슷-!’
미세한 소리와 함께 빛이 나던 실들이 하늘하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람이 세게 불어오며 실들이 이리저리 날렸다. 눈을 살짝 감고 느긋하게 바람이 멈추길 기다리던 남자는 이윽고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바람이 멈췄을때 즈음 느긋하게 그곳을 지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발자국을 내딛자마자 낭패라는 표정을 짓던 남자는 이를 악물고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남자가 뛰어오르자마자 그가 서있던 곳에 새하얀 빛덩어리가 커다란 구의 모양으로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미친. 저게 뭐야.”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빙글 돌려 앉은 그는 점점 갯수가 많아지는 둥근 모양의 빛의구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쯧. 하고 혀를 찬 남자는 흰 구가 늘어가면 늘어갈수록 자신의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족의 힘을 빼앗는 구였다. 씨발, 교황새끼가 이번엔 아주 단단히 준비했구만.
남자는 친절한 척 웃으며 자신의 뒷통수를 치고 도망갔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태양신의 머리카락과 같은 백금발. 미의 신의 가호를 받은 아름다운 외모.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책에서 본 이야기로는 신의 보석이라는 아뮬렛의 보석을 먹은 여인으로 인해 그의 눈은 아뮬렛과 같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푸른색이라 한다. 확실히 그 교황놈의 눈은 보석에 환장하는 그가 한눈에 반해버리긴 했다. 그러니까, 눈동자만. 처음 봤을때는 그의 눈만 빼서 보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말을 입밖으로 꺼내긴 했다. 죽을뻔하긴 했지만.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남자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부르르 떨었다. 개새끼. 아니, 개만도 못한 새끼. 내가 미쳤다고 그걸 훔치러 가서 ……. 남자는 한숨을 푹 쉬곤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을 보고 오늘은 포기하고 나중을 기약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개만도 못한 놈에게 ‘다시’ 가는 이유는 하나였다.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서. 남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구제불능이라 생각했다. 그놈의 보석이 뭐라고. 보석. 보석. 보석! 내 사랑 보석. 보석은 진리였다. 특히 스스로를 미친놈이라 불렀으면서도 교황에게 목걸이를 훔치려고 다시 이곳으로 온 이유는 하나였다.
반짝반짝허니 예쁘니까.
남자는 교황에 목에 걸려서 아름답게 반짝이던 붉은색 보석을 떠올리며 실실 웃었다. 반드시 훔치고 말겠다. 하고 다짐한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공기중으로 스며들듯 사라졌다. 남자가 사라진 뒤 아무도 없던 나무 위로, 붉은눈의 남자가 있던 곳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백금발의 아름다운 사내가 소리없이 앉아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얼굴에 나 재미있어. 라고 써놓은 그는 킬킬 웃으며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가벼운 자세로 착지한 그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미온.”
“부르셨습니까.”
남자의 부름에 총총 걸음으로 나타난 미온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미온을 바라보던 남자는 손목에 걸려있던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 뒤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바고의 현재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교황님의 미미한 신성력이 깃든 실이 들어갔기 때문에 교황님께서 힘을 쓰시면 공명하기 때문에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만족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띤 남자는 조긍 전 사라진 남자가 서있던 곳에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푸른 하늘 사이에 커다란 보름달이 외로히 떠 있었다.
Act1. 오지마.
나른하니 몸을 길게 쭉 빼고 쇼파 위에 누워있던 바고는 입을 찢어지게 벌리며 하품했다. 열린 창문 안으로 따뜻한 봄바람이 들어와 바고의 길다란 검은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밤새 이동했던 까닭에 힘을 많이 소비한 나머지 잠이 쏟아졌다. 하긴, 이탈리아에서부터 한국으로 쉴틈없이 공간이동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는 구르듯 쇼파에서 내려와 화장실까지 기어갔다. 도저히 몸에 힘이 안들어가긴 하지만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가야했다. 자신의 처량맞은 신세에 한숨이 푹푹 나왔지만 그에게는 남은 것이 없었다. 바고는 마왕의 막내아들 이었다. 하지만 보석이란 보석은 모두 모으려는 어마어마한 욕심을 가진 바고의 성질을 마왕조차 이겨낼 수 없었다. 온갖 귀중한 보석들을 훔치다 못해 마신의 신전에 있는 보석까지 훔치려다가 걸린 미수범 이었다. 위로 있는 두 형들도 정상인이 아니것만 오냐오냐 예쁘다예쁘다 하고 키운 막내아들까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마왕은 바고를 돈만 많이 쥐어주고 중간계로 보내버렸다. 그나마 상대와 피를 보지 않는 선에서 그친 막내를 보내는게 덜 피곤하다는 판단이었다. 바고는 아직 마계에서만 존재하는 아멜라의 눈동자<마신의 보석>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울고불고 마왕에게 매달리며 난리쳤지만 마왕은 코웃음 한번 날리며 말했다.
‘마계는 안 돼. 중간계는 돼.’
이 말에 바고는 얌전히 중간계로 갔다. 어차피 오래 살텐데 중간계에 있는 보석들을 죄다 훔친 뒤에 마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훔쳐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간계에 존재하는 보석들을 훔치고 다녔다. 유명한 보석들 위주로 훔치고 이왕 훔칠거면 유명해지자! 하는 마음으로 마계에 있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검은 장미가 그려진 카드를 남기고 사라지곤 했다. 덕분에 <괴도 블랙 로즈>라는 유치찬란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제법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세계를 노나니던 도중 한 책을 보게 되었다. 세계의 귀중품들이 설명된 책자. 찬찬히 책을 살펴보며 아름답게 빛나던 보석들을 감상하고난 뒤 바고는 즉시 훔칠 계획을 세웠다. 삼색이 부드럽게 어우러진 귀중한 토멀린으로 만든 티아라 <아폴론 크리스>, 유명한 장인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직접 조개에 진주를 키워 수십년간 만든 반지 <인어의 눈물>, 달에서 온 고양이가 죽은 뒤 눈이 굳어 만들어졌다는 캣츠아이문스톤으로 만든 팔찌 <영광의 아리아>, 마지막으로 대대로 교황의 후손에게만 물려주는 알렉산더라이트로 만든 목걸이<요한>까지 최고로 유명한 세계 4대 귀중품들은 바고의 마음에 쏙 들었다.
‘꼬르륵.’
“아, 씨댕. 배고파 …….”
현실은 가난한 백수로 위장한 마족이었지만.
아무리 보석을 많이 훔치면 뭐하나, 실상은 팔지를 못하니 애물단지지. 바고는 한번 가지게 되면 금방 질려서 내버려두곤 했다. 집착이 심했던만큼 금방 질리는 성미에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훔치려고 했던 것이었다. 마계에서는 넘치른게 돈이라 내버려두고 있었지만 중간계에서는 무리였다. 돈이 없어서. 암시장 루트만 알아내면 되는데 연줄이 없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마법을 사용하면 된다. 아니었다. 중간계에선 오히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처음으로 중간계에 올라와서 제일 많이 놀랐던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이 ‘마법’이 아닌 ‘타프Taff’라고 불리우는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인간들 모두가 강한 능력을 가진것은 아니었고 그들 중에서도 특별히 강한 것들만 모아놓은 기구가 있단다. 아무튼 타프라는 능력은 성가셨다. 특별한 놈들-인간들로 치면 S랭크 능력자들이라 하는-만 두 세가지의 능력을 사용한다. 즉, 여러 능력을 사용하는 순간 표적이 되어 거의 반강제로 그 기구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세계의 능력자들이 달려든다. 세계를 위해 써야한다나 뭐라나.
이 세계에는 주기적으로 엄청난 수의 괴물들이 몰려온다. 아마 마계에 있는 숲에서 결계가 뒤틀리며 튕겨져 나오는 마물들로 추측되긴 하지만 중간계에서는 알리가 없으니 기구에서 파견된 인간들이 죽인다고 한다. 제법 센 녀석들이 많은가 싶어 구경좀 가려니 슬쩍 얼굴만 내밀었다가 경보용 타프가 발동하는 바람에 도망갔다. 뭐에 반응한건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었다.
바고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길었던 머리카락이 금새 평범한 길이로 돌아갔고 마족의 특징인 붉은 눈동자가 어디에서나 볼법한 갈색 눈동자로 변했다. 전형적인 아시아인의 모습으로 변한 그는 배고픈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있을게 아니라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야지. 밥을 먹어야 교황놈의 목걸이를 훔치러 갈 것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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